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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과 조선(환단원류사)

2020.06.20 09:58

朴民宇 조회 수:703

 




   홍종국 선생이 젊었을 때 공주 마곡사(麻谷寺) 상원암(上院庵)에서 오랫동안 비전(秘傳)되어 온 고서들 중에 최치원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을 보았으나 훗날 암자에 불이 나서 고서들이 완전히 멸실되었다고 한다. 


 그후 홍종국 선생은 1971년 필사본을 참고하여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을 복간하였다. 


 그러나 지금 학계에서는 원본이 없다는 이유와 홍씨의 가필이 너무 많아 위서로 단정하고 있다.


 제왕연대력이 비록 원본이 없는 위서일지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임검(壬儉)께서 단국(檀國)을 세우셨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임검(壬儉)과 단국(檀國), 그리고 조선(朝鮮)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소상히 알아보겠다. 이는 우리 환민족사(桓民族史)의 이정표를 세울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帝王年代歷 / 崔致遠


 檀君紀 / 檀君


 甲子十月三日誕降, 戊辰十月三日卽位, 庚子三月十五日昇遐. 在位九十三年, 壽二百七十年.




 갑자년 10월 3일 탄강하셨으며, 무진년 10월 3일 제위에 오르시고, 경자년 3월 15일 승하하셨다. 제위에 있으신지 93년이요 향년이 270년이다.




 戊辰 國人推戴神人爲君, 定國號曰檀 頒敎令 設壇祭天




 무진년에 나라 사람들이 신인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나라의 이름을 '단'이라 정하고 교령을 반포하였으며, 제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를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서에도 똑같은 내용으로 기록하였으므로 소개해보겠다. 




  해동춘추(海東春秋) 단씨조선기(檀氏朝鮮紀)




 단군은 갑자(甲子) 10월 3일에 탄강하여 무진(戊辰) 10월 3일에 즉위하여 국호를 단(檀)이라 하고 23년인 경인(庚寅)에 수도를 평양(平壤)으로 옮기고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바꾸었으며 경자(庚子) 3월 15일에 승하(昇遐)하여 93년간 재위(在位)하였고 연수(年數)는 217세였으며 을미년(乙未年)에 47대 1048년에 망했다.




 조선사략(朝鮮史略) 단조기(檀朝紀)




 단군은 갑자(甲子) 10월 3일에 탄강하여 무진(戊辰) 10월 3일에 즉위하고 경자(庚子) 3월 15일 승하하여 재위 93년이며 나이가 217세이다. 무진년(戊辰年)에 나라 사람들이 추대하여 임금이 되고 국호를 정하여 단(檀)이라 하다. 경인년(庚寅年)에 평양(平壤)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고쳐 조선(朝鮮)이라 하다. 역년이 1048년(47世)이다.




 조선세가보(朝鮮世家譜) 환씨단군조선(桓氏檀君朝鮮)




 시조(始祖) 개천(開天) 홍성제(弘聖帝)는 이름은 검(儉)이요, 신시천왕(神市天王) 환웅(桓雄)의 아들이라. 무진년(戊辰年. 서기전 2333. 당요 25년) 겨울 10월 등극하고 수도는 태백산 밑에 두고 국호는 진단(震檀)이라 하였으며, 366조의 율령을 만들었다. 23년 경인년(庚寅年)에 평양(平壤)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고쳤다. 재위 93년, 향년 217세라. 환씨는 무릇 47세로 역년이 1212년 이라.


 대동사강(大東史綱) 단씨조선기(檀氏朝鮮紀)




 시조 개천홍성제는 재위 93년이요, 나이는 217세라. 무진 원년인 당 요 25년에 등극하여 태백산 밑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단(震檀)이라 하다. 경인 23년에 평양(平壤)으로 이도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고쳤다. 환씨는 무릇 47세를 지나 1212년 이라.




 신단실기(神檀實記) 단군세기(檀君世紀)




 상원갑자 10월 3일 환검(桓儉)이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가지고 태백산에 단목 밑에 내려오시다. 개천 125년 무진(서기전 2333) 10월 3일 나라사람들이 추대하여 임검이 되니 단군이시라. 국호를 단(檀)이라 하였으며, 117년 경인년에 태백(太白)에서 평양(平壤)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고쳤다. 217년 경자(庚子) 3월 15일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되니 개천(開天) 217년이, 재위 93년이며 전하기를 1212년이라. (인용 끝)


 


 환국(桓國)에서 단국(檀國)으로 국호가 바뀐 것이다.


환국(桓國)은 환인씨께서 처음으로 세운 환국이 있고 그 다음으로 배달나라 환국이 있었다. 배달나라 환국은 환웅천황 18대가 다스렸다. 그 후 임검씨가 배달환국의 뒤를 이었으며 나라 이름을 단국(檀國)이라 하였다. 


 단국(檀國)과 환국(桓國)은 같은 뜻이다. 광명과 같은 밝은 지혜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뜻한다. 


 환(桓)과 단(檀)의 어원은 라틴어로 Phan(환)이며 한자로는 빛날환(煥)과 같은 뜻이다. 우리말에도 빛이 밝은 것이나 지혜가 뛰어난 것을 ‘환하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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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桓)과 단(檀)은 천문학으로 만들어진 글자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환(桓)은 태양이 가장 높이 뜬 하지점과 동지점을 표시한 글자이다. 


  단(檀)은 환(桓)에 천문기구인 혼천의를 추가한 것이다. 단국시대에는 천문학의 발달이 혼천의까지 사용할 정도로 발달했다는 뜻이 담겨있다. 


 상고시대에 천문을 살피는 일은 천자(天子)만이 할 수 있었던 권한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단군(檀君)이라는 호칭은 천자(天子)의 권위에 맞지 않는다. 이를 제대로 된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단군(檀君)은 단국(檀國)의 제후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단군은 황제의 친척이나 왕족이라는 것으로 황제를 뜻하는 제(帝)가 있고 그 다음에 왕(王)이있으며 그 다음에 군(君)이 정해졌으니 군(君)은 제(帝)로부터 2단계나 아래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고려 말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가 나오기 이전의 사서에서는 단군(檀君)이라는 호칭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으로부터 뭔가 잘못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사찬(私撰)인 것에 비해 삼국사기(三國史記)는 국가에서 주관한 정사(正史)이기 때문에 더 신뢰가 가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보다 136년 앞서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선인왕검(仙人王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국가에서 선인(仙人)은 곧 신격(神格)이었으니 신(神)은 하계를 다스리는 황제(皇帝)보다 높은 지위인 것이다. 




 『삼국사기』 권17 동천왕 21년


“평양은 본래 선인 왕검의 집이다. 혹은 왕의 도읍을 왕험이라 한다(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




 그렇다면 단국(檀國)이라는 천자(天子)의 나라가 있었고 조선(朝鮮)이라는 땅(지명)에 단군(檀君)이라는 제후(諸侯)들이 있었다고 보아야한다. 


 환인천제께서 다스린 환국(桓國)과 환웅천황께서 다스린 환국(桓國), 그 다음 환(桓)에서 단(檀)으로 바꾸었으니 천문학이 발전한 나라였으며 주변에 조선(朝鮮)이라는 땅(해가 뜨는 곳)에 흩어져 사는 만백성과 여러 나라들을 제후국으로 다스렸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럼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무엇일까? 앞에 소개한 예문에 단국을 세운 후 경인년(庚寅年)에 평양(平壤)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호를 고쳐 조선(朝鮮)이라 고쳤다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단국이나 조선이나 같은 광명이므로 같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들마다 보는 눈이 달라서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제(檀帝)라고 해야 할 것을 단군(檀君)으로 표기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예문에서도 밝혔듯이‘조선세가보(朝鮮世家譜) 환씨단군조선(桓氏檀君朝鮮)’과‘대동사강(大東史綱) 단씨조선기(檀氏朝鮮紀)’에는 시조(始祖) 개천(開天) 홍성제(弘聖帝)라고 하였다. 따라서 단군(檀君)이라는 호칭은 제후 왕을 뜻하므로 쓰임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한(漢)나라가 세워진 이후 사마천(司馬遷)이 동이(東夷)의 역사를 왜곡하였기 때문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저술하며 삼황오제(三皇五帝)만 남겨놓고 그 윗대 조상은 모두 잘라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한족(漢族)이라 하였으니 이는 중화민족의 정통성은 한족(漢族)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마천의 이러한 역사 왜곡은 당시 동이(東夷) 단국(檀國) 조선(朝鮮)의 황제(皇帝)에 대한 두려움과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유의 역사 왜곡은 오늘날 일본학자들도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하겠지만 도대체 일연 스님 이후에 단군(檀君)관련 기록을 남긴 사람들과 이씨 왕조는 왜 그런 오류를 범했던 것일까? 오류인가? 실수인가? 왜곡인가? 빤히 알면서 그랬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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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실은 환단고기 관련 역사서를 쓴 학자들도 마찬가지 실수를 한 것으로 보아 한반도 조선(朝鮮)사회에서 삼국유사(三國遺事)가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으며 단군(檀君)이라는 호칭이 빠르게 보편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또 한반도에서 이씨 왕조 조선(朝鮮)이 지속되었던 약 500여 년 동안 명(明)나라 청(淸)나라에서도 단군(檀君)이라는 호칭을 널리 쓰지 않았던 것을 보면 단군(檀君)이라는 호칭은 한반도에서만 쓰인 독자적인 것이었고 역사를 왜곡하기 위한 의도가 숨겨진 호칭이었지 동아시아 전체에 널리 알려졌던 황제(皇帝)의 의미가 담긴 호칭이 아닌 것이다. 


 삼국사기에서는 신라(新羅)의 김유신은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예라고 하였고 고구려는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의 후예라고 기록하였으므로 단군(檀君)이란 고려(高麗)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나오지 않는 명칭이며 물론 서토인(西土人)들의 정사(正史)에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임검(壬儉)이란 호칭이 있었으며 임검(壬儉)이란 북수(北水)의 제왕(帝王)으로 하늘궁에 계시고 인간의 생명을 주제한다고 하였다.(三神五帝本紀) 또한 임검(壬儉)이 님금이 되고 왕검(王儉)이 되기도 하여 정사(正史)에 기록된 바는 있지만 단군(檀君)이란 호칭은 보이지 않는다.




 사마천부터 시작된 주변국 역사 왜곡은 환인천제, 환웅천황, 단국황제 삼성(三聖)을 비롯하여 동이(東夷)의 삼신오제(三神五帝)를 완전히 삭제했으므로 서토인(西土人)의 역사는 제대로 쓰여진 것이 없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 없다. 다만 경계하고 참고할 뿐이다.


 명(明)나라 청(淸)나라 국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명(明)은 밝고 환한 것을 뜻하므로 우리의 환국에서 유래한 명칭이며, 청(淸)도 사전적 의미로 보면 빛이 선명하다는 뜻인데 이 또한 밝달환국의 이름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밝고 환한 광명을 국호로 쓴 민족은 동이(東夷) 뿐이다. 따라서 일본(日本)도 동이(東夷)의 후예이며 우리의 형제인 것이다. 


 사기(史記)에 조선은 원래 열수 부근의 지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열수는 오늘날 황하가 바다로 빠져 나가는 하류의 많은 물줄기 중 하나이며 오늘날 북경 부근에서 산동반도까지이다. 그리고 동진(東晉) 시기에는 이곳의 지명이 낙랑지역 이었다고 산해경을 주해한 곽박이 말했다.




산해경 제 18 / 해내경(山海經 第十八 /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동해의 안쪽과 북쪽에 해안가 (벌판과 갯벌, 수풀이 우거진 곳)에 국명하야 조선(朝鮮)이 있다. 조선은 하늘이 다스리고 길러내신다. 그 사람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다.”




 * 고어사전 이아(爾雅) 석지(釋地)에 해우(海隅)는 바닷가에 우거진 수풀이라고 기록함. 




이아(爾雅) . 석지(釋地)




구주(九州) / 십수(十藪) : 습지 열(10)곳의 호칭




“魯有大野,晉有大陸,秦有楊陓,宋有孟諸,楚有雲夢,吳越之間有具區,齊有海隅,燕有昭余祁,鄭有圃田,周有焦護。”




 “노(魯) 나라에는 대야(大野)가 있고 진(晉) 나라에는 대륙(大陸)이 있고 진(秦) 나라에는 양우(陽陓)가 있고 송(宋) 나라에는 맹저(孟諸)가 있고 초(楚) 나라에는 운몽(雲夢)이 있고 오(吳) 나라와 월(越) 나라 사이에 구구(具區)가 있고 제(齊) 나라에는 해우(海隅)가 있고 연(燕) 나라에는 소여(昭余)가 있고 정(鄭) 나라에는 포전(圃田)이 있고 주(周) 나라에는 초호(焦護)가있다. 이것을 10개의 큰 숲이라 한다.”




 “ 주(注)... 제(齊) 나라의 해우(海隅)는 해빈(海濱 . 해변가) 광척(廣斥)이다. 광척은 동방을 척(斥)이라 하고 서방을 노(鹵)라 했는데 소금기가 있는 땅이다. ” 




 해내경(海內經)의 해내(海內)는 서쪽으로 지금의 천산, 곤륜산과 동쪽으로 산동성까지를 말한다. 그러니 해내(海內)의 동쪽 끝이 조선(朝鮮)인 것이다. 


 산해경은 나아가서 그 동쪽에 청구(靑丘)가 있다고 하였으며 이는 한반도의 서쪽 땅이 수몰되기 이전 시대에 있었던 청구(靑丘)를 말한 것이다. 


 그로부터 동쪽에 군자국(君子國)이 있다고 했으니 군자국(君子國)은 삼신산(三神山)을 말하는 것이며 지금의 대련지구가 있는 요동반도이다. 그리고 백두산 부근에 숙신국, 백민국, 대인국이 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산해경은 비교적 정확한 기록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부도지에서는 이를 불함삼역(不咸三域)이라하였다. 


 또 산해경에 기록하기를“해동(海東)에 군자국(君子國)이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의관(衣冠)을 갖추고 허리에 칼을 찼으며, 서로 양보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 또 이 나라에는 근화(槿花)가 있는데, 이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라고 하였다.   해동(海東)은 우리나라이다. 산해경 당시에는 육지였던 서해(西海)에 물이 가득 차서 우리나라를 해동(海東)으로 인식하였다. 


 해동의 위상이 그러하므로 조선은 대륙의 동쪽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은 하늘이 길러내시고 다스린다는 말은 바로 천부인(天符印)을 가진 천자(天子)의 나라 삼신산(三神山)에서 신선(神仙)들이 다스린다는 말이다. 




 천독(天毒)은 산스크리트로 보면 천도(天道)를 뜻한다. 됴(道 . dhi^-o^)는 참선하다, 명상하다 라는 뜻이며 또 길(Pass)을 뜻하기도 하지만 먹여 살린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말에 도아 조(助 도울조) 또는 도아 도(doha-do) 라고 하는 것은 산스크리트 도아(doha)이며 젖을 먹여 기른다는 의미이다. 도아(doha)는 영어로 밀크(milk 우유)이고 또 막걸리를 빗는 양조장을 술도가라고 하는데 도가는 곡물을 발효시켜 술을 빗는 공장을 뜻한다. 가(家)는 산스크리트로 전문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독(天毒)은 하늘이 길러낸다는 뜻이며 결국 먹여 살린다는 의미와 궁극적으로 道로써 다스린다는 의미가 있다. 그것이 이도여치(以道與治) 이며 치(治)자도 길러낸다는 뜻으로 이도여치(以道與治)는 道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천독(天毒)은 천도(天道)이며 천도(天道)는 道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과 통하며 그래서 태극도설(太極道設)에는 道는 만물을 생육한다(道生育萬物)고 하였다. 道는 생육과 직결되는 산스크리트가 어원이며 결국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는 것은 욕이 아니고 도통해서 잘 살아 라는 뜻이다.




 조선은 처음에 국호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해가 뜨는 곳이란 뜻이었다. 지명과 국호는 다른 것이다.“해가 뜨는 동녘에 있기 때문에 조선이라 호칭한 것이다.” 하였고, 색은(索隱)에는,“조(朝)의 음(音)은 조(潮)이고 선(鮮)의 음은 선(仙)인데, 거기에 산수(汕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한 것이다.” 하였다. 


 동사보감(東史寶鑑)에,“조선(朝鮮)의 음은 조선(潮仙)인데, 산수(汕水)로 인하여 명명된 것이다.” 하고, 또,“선(鮮)은 명(明)의 뜻인데, 이 지역이 맨 동녘에 있어 해가 맨 먼저 밝기 때문에 조선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동국정운에 의하면 둏헌(朝鮮)인데 '됴흐'는 해가 뜨는 것을 말하며, '됴오타'하면 좋다는 뜻인데 '땅위에 해가 솟는 구나' 이런 뜻이다.


 朝(됴)[ 平]4:18. [ 平]동국정운4:19.     , dioyata: 됴광하다, 비치다, 동트다, 해가 뜨다.  ('조선고어실담어주석사전' 600 쪽 참고)




 종합하여보면 천자국의 서쪽 땅이며 현재 중국대륙의 동쪽에 동이(東夷)들이 사는 땅을 자타 스스로 조선(朝鮮)이라고 부른 것이다. 원래 지역의 강(江) 이름에서 연유하여 조선이라 하였으니 조선은 처음부터 국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청나라 때 지은 사고전서에는 이 지역에 사는 민족을 우이(嵎夷)라 하였는데 그것도 이아(爾雅) . 석지(釋地)에서 기록한 제(齊) 나라에 있었다는 해우(海隅)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 지역은 환국시대부터 천신(天神)의 보살핌이 있었던 땅이다. 자오지 천황은 이곳에서 황제와 전쟁을 치렀으며 또 다스렸다. 그로부터 이 땅을 청구(靑丘)라고도 하였다. 


 청구(靑丘)는 우공구주산천지도(禹貢九州山川之圖)에 청주(靑洲)로 표시하였으며 이 지역은 오늘날까지 청주(靑洲)로 부르고 있다. 청주(靑洲)는 영원한 낙랑지이며 조선지인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단국이 조선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연유야 어쨌든 뜻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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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견해는 규원사화, 단군세기, 단기고사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부루단제께서 제후국을 순방하였으며 순임금과 요임금 기타 조선 땅에 여러 제후들도 굴복하였다. 우임금의 치수를 도와주었고, 나는‘북극수정자‘이니라 하면서 자신을 소개하였으며 금간옥첩까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북극수정자’란 삼신오제본기와 역대신선통감에서 언급하는바 인간의 목숨과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성의 神을 말한다. 이는 단제(檀帝)가 바로 천자(天子)라는 말이다.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삼신산(三神山)에서 천자(天子)께서 다스리고 동해의 안쪽에 조선이라는 지명에는 여러 제후국들이 다스렸는데 이곳을 다스리는 님금은 모두 단군이라 호칭하였던 것이다. 단국시대 초기에는 단국과 조선은 구별이 가능하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구분이 차츰 희미해졌다고 본다. 




  역사가들은 지금 보이는 잣대만으로 단제(檀帝)를 단군(檀君)으로 단국을 조선으로 기록하게 되었는데 이는 지금 우리 상고사 관련사서가 말살되어 씨가 말라버린 탓도 있다고 본다. 또 시베리아나 몽골에서도 부족을 다스리는 단군이 있었으며 고대 유럽에서 마을이나 부족을 다스리는 제사장도 모두 단군이었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단군은 제후왕의 호칭이고 단국을 다스리는 님금은 임검씨(壬儉氏 . 부도지) 또는 단제(檀帝 . 이유립)로 불러야한다.


 그런 후에 제후국에서 조선에 들어가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조빙(朝聘)이라 하였고 조선의 천자와 신하가 국사를 논하는 곳을 조정(朝廷)이라 하였으며 또 부도지에 기록하기를 단국에서 매년 사해의 종족들에게 무역시장을 열어주었으니 이를 조시(朝市)라 하였다. 조시(朝市)가 열리면 섬나라 백성들은 물고기(魚)를 조공(朝貢)하였으며 산악에 의지하여 살던 백성들은 양(羊)을 잡아 조공(朝貢)하였으므로 조선(朝鮮)이라는 한자(漢子)에 물고기(魚)와 양(羊)이 들어간 것이다. 단국의 천자는 물고기(魚)와 양(羊)이 피의 희생을 당하였으므로 그들을 위한 제사를 지내주었는데 이를 조제(朝祭)라고 하였다.


 이런 한자(漢字)와 정치언어의 개념은 단국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후 모든 역사책에서 굳어진 채로 사용되고 있다. 한자(漢字)의 기원을 은나라 갑골문자에서 찾지 말고 바로 단국과 조선의 동이족에게서 찾아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임진년에 일본의 풍신수길(豊臣秀吉)은 조선을 치기 위해 사신을 통해 편지를 보내왔는데 선조대왕에게 감히 입조(入朝)하라는 말을 썼다. 즉, 선조는 일본에 와서 풍신수길(豊臣秀吉) 자신을 알현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면 입조(入朝)는 조선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조선왕이 조선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닌 것은 분명하니 이때 조(朝)의 어원은 이씨(李氏)의 조선이 아닌 바로 단국(檀國)조선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고시대 조선(朝鮮)은 역사적으로 천자의 나라인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으며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 뇌 새김 된 정치적 명사인 것이다. 그 이유는 단씨(檀氏)의 나라가 47대에 걸쳐 궐 천년이 훨씬 넘도록 전 세계를 지배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류 역사의 유아기를 통치해왔던 부모의 나라에 대한 기억을 역사가 한 두 명의 필설 때문에 바꾸어지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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